AI 시대의 위임전쟁
AI가 만든 정답보다 사람의 불완전한 경험이 더 오래 남는 이유를 살펴보고, 무엇을 AI에게 위임할지 판단하는 기준을 생각합니다.
나는 AI가 만드는 콘텐츠가 꽤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검색보다 빠르게 맥락을 정리하고, 복잡한 내용을 구조화하며, 내가 놓친 관점을 보완해준다. 그런데 얼마 전 BeeBs에서 AI Slop을 경계하는 글을 읽으며, 사람들이 AI 콘텐츠를 단순히 불편해하는 수준을 넘어 꽤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글에는 특정한 표현이나 형식이 보이면 아예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em dash였다. em dash가 들어간 글은 AI가 쓴 것처럼 느껴져서 바로 넘긴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어 글에서는 em dash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들어간 순간 오히려 AI가 쓴 글이라는 신호처럼 보일 수 있다. 댓글에는 AI;DR이라는 표현도 등장했고, AI가 만든 글을 사람이 쓴 것처럼 바꿔주는 스킬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AI가 만든 글을 그대로 읽기보다는, 사람이 쓴 것처럼 다시 가공해야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요즘 사람들이 AI 콘텐츠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I Slop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AI;DR 같은 말까지. 이를 단순한 AI 거부감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AI 그 자체라기보다 AI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특정한 특성에 가깝다. 왜 사람들은 AI가 만든 콘텐츠를 싫어하고 쉽게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AI가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과 사람들이 타인의 경험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사람들은 타인의 글을 읽을 때 단순히 정보를 얻으려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잘못 판단했으며, 그 결과 무엇을 배웠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타인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서는 정답보다 경로가 중요하다. 누군가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누군가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며, 누군가는 명백히 손해처럼 보이는 행동을 집착 때문에 계속한다. 그리고 그런 불완전한 선택의 결과에서 뜻밖의 통찰이 나오기도 한다.
반면 AI의 답변은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수렴한다. 여러 사례와 일반적인 지식을 압축해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형태의 답을 만든다.
“충분히 검증하고,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라.”
대부분 맞는 이야기다. 문제는 너무 맞다는 데 있다. 틀린 부분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남는 것도 적다. 그 답에는 사람이 실제로 어디에서 실수했는지, 무엇을 오해했는지, 당시에는 왜 그 선택이 옳다고 믿었는지가 빠져 있다.
사람의 경험은 평균값이 아니다. 각자는 분포의 어딘가, 때로는 아주 이상한 위치에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어떤 사람은 특정한 문제에 비합리적일 정도로 집착한다. 그 편향과 불완전함까지 포함해 한 사람의 경험이 된다. 그런데 AI는 많은 사람의 경험을 종합할수록 그 중앙으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가장 합리적인 답을 얻지만, 동시에 가장 특이한 부분을 잃는다.
그래서 AI가 쓴 글을 읽을 때 흔히 이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아무것도 남지 않지?”
모든 문장이 이미 결론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글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다.
“나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다.”
“당시에는 이게 맞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틀렸던 것 같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도 비슷하게 할 것 같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불필요한 문장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문장이 그 사람의 좌표를 보여준다. 무엇을 믿었고, 어디에서 생각이 바뀌었으며, 아직 무엇을 확신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준다.
AI는 이런 잡음을 제거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 글을 매끄럽게 만들고, 반복을 없애고, 논리를 정리하며, 빈틈을 채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AI에게 글을 잘 써달라고 할수록 사람이 사라질 수도 있다. 경험의 모순을 정리하고, 감정적인 부분을 제거하며, 애매한 판단을 명확한 주장으로 바꾸다 보면 원래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모양이 사라진다. 남는 것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좋은 글’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인간이 해야 할 일과 AI에게 맡겨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점점 답이 명확해지는 것 같다. 경험과 영감은 사람이 남기고, 편집은 AI에게 맡기면 된다. 무엇을 경험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무엇을 믿었는지, 어디에서 틀렸는지는 인간이 제공해야 한다. AI는 그것을 더 잘 읽히게 만들고, 구조를 잡고, 반복을 줄이고, 표현을 다듬는 역할을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제거하지 않는 것이다. “내 글을 더 논리적으로 만들어줘”라고 요청하는 대신, 이렇게 요청하는 편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내가 당시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지금도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 비합리적이었던 선택은 지우지 말고 읽기만 쉽게 만들어줘.”
AI에게 좋은 글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전달력을 높여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 시대의 경쟁은 프롬프트 경쟁도, 생성 속도 경쟁도 아닌 것 같다. 더 본질적으로는 위임의 경쟁이다.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맡기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능력의 경쟁이다.
이것은 글쓰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발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드를 타이핑하는 일은 AI에게 점점 더 많이 맡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 어떤 구조를 선택할 것인지, 무엇을 위험으로 볼 것인지, 어떤 코드를 거부할 것인지까지 무작정 넘겨버리면 결과는 평균적으로 좋은 코드에 수렴한다. 동작은 하지만, 그 시스템이 처한 구체적인 맥락과 의도는 사라질 수 있다. AI에게 구현을 맡길 수는 있지만, 판단까지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력서도 비슷하다. AI에게 문장을 다듬게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AI가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도록 맡기기 시작하면, 이력서는 더 이상 그 사람을 보여주는 신호가 되지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사용했느냐다.
앞으로의 차이는 AI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만 생기지 않을 것 같다. AI에게 전부 맡기는 사람과 정확하게 나눠 맡는 사람 사이에서도 큰 차이가 날 것이다.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것이 아니라, 자동화하면 안 되는 부분을 아는 사람이 더 강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AI 시대에 일종의 위임전쟁이 발발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강력한 도구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도구 자체가 아니다. 자신의 일에서 가치가 생기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반복과 정리는 AI에게 넘기면서도 경험과 판단과 책임은 끝까지 쥐고 있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이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Human in the loop의 정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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