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을 바라는 당신, 로또는 샀나요?
운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주칠 표면적을 넓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 누가 내 삶의 ‘천사’가 될지는 결국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으니까.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상상을 해본다. 길을 가다가 곤란에 처한 사람을 우연히 도와줬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엄청난 기업의 총수였다는 이야기. 그는 내 도움을 잊지 않았고, 훗날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를 건넨다. 그렇게 내 인생에도 갑자기 탄탄대로가 열린다. 조금 유치하지만 꽤 기분 좋은 상상이다.
재미있는 건 우리가 이런 우연을 바라면서도, 정작 우연이 일어날 만한 행동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을 바꿀 만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는 않고, 예상하지 못한 기회를 원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내 삶에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기를 바라면서도 매일 같은 곳을 오가며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말하자면 인생역전을 바라면서 로또는 사지 않는 셈이다.
물론 정말 복권을 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요즘 생각하는 운은 조금 다르다. 운 그 자체는 통제할 수 없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찾아올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운과 마주칠 수 있는 표면적은 넓힐 수 있다.
글을 하나 쓰면 세상과 맞닿는 면이 하나 생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또 하나가 생긴다.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곳에 가고,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는 별것 아닌 행동이지만, 그런 행동이 쌓일수록 내 삶에 사건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은 많아진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건이 생길 가능성도 작아진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이고 편안하다. 다만 그 삶에 새로운 일이 끼어들 수 있는 틈도 함께 줄어든다.
나는 요즘 운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운이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두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애초에 문이 없다면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다.
오타니 쇼헤이가 고등학생 시절 작성했다는 만다라트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야구선수로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그는 그중 하나로 ‘운’을 적었고, 그 아래에 쓰레기 줍기나 인사 같은 행동들을 적어두었다고 한다. 쓰레기를 줍는다고 공이 빨라지는 것도 아니고, 인사를 열심히 한다고 홈런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미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 부분이 재미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운’이라는 영역까지도 자신이 행동할 수 있는 문제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가만히 있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것이다.
운 자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더라도, 운이 들어올 만한 삶의 모양을 만들어볼 수는 있다.
나 역시 요즘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매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만나면 인사하고, 가능하면 친절하게 대하고, 누군가 어려워하면 조금 돕는다. 그런 행동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활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조금 권태로워졌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것저것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이전 같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해본다. 꼭 대단한 성공을 만들고 싶어서라기보다 내 삶에 조금 더 많은 ‘사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사람 역시 부담이라기보다 하나의 가능성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 사람을 만나면 내 삶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무엇을 알려줄까. 어떤 생각을 전해줄까.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줄 수도 있고, 재미있는 장소를 알려줄 수도 있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내가 몇 년 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도 괜찮다.
여기서 사람을 ‘기회’라고 보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겠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그 자체로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혼자였다면 만나지 못했을 정보와 경험과 다른 사람들에게 닿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뜻에 가깝다. 그리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 사람에게 새로운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내가 건넨 말 한마디나 작은 도움이 그 사람에게 어떤 방향을 만들어줄지는 나 역시 알 수 없다.
그래서 예전에는 다소 막연하게 느껴졌던 친절과 매너가 요즘에는 꽤 현실적인 행동처럼 느껴진다. 먼저 인사하는 것, 누군가를 조금 돕는 것, 알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 새로운 사람과 몇 마디 더 대화해보는 것. 당장 눈앞에 보이는 보상이 없더라도 이런 행동들은 내 삶이 세상과 닿는 면을 조금씩 넓힌다. 내가 어떤 기회를 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도 전과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낯선 사람을 잘 대접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천사를 대접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이 말을 그저 ‘누가 귀한 사람인지 모르니 모두에게 친절하라’는 도덕적인 가르침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의미로 읽힌다.
핵심은 정말로 누가 천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될지 미리 알 수 없다. 지금은 별것 아닌 인연처럼 보였던 사람이 몇 년 뒤 내게 새로운 일을 소개해줄 수도 있고,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평생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을 통해 배우자를 만나거나, 직업이 바뀌거나,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일어난 다음에야 우리는 말한다. “그 사람이 내 인생의 귀인이었어.” 여기에는 일종의 사후편향이 있다. 결과를 알고 난 뒤에는 그 만남이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그 사람이 처음부터 ‘천사’라는 표시를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났던 것처럼 기억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순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날의 그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천사는 만나기 전에 알아보는 존재가 아니라, 지나고 나서야 천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천사를 잘 골라내는 능력이 아니다. 앞으로 도움이 될 사람을 계산하고, 가치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만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애초에 누가 어떤 사람이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가끔 먼저 말을 걸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보는 편이 낫다. 내가 천사를 알아볼 수 없다면, 천사를 만날 가능성이 있는 문을 많이 열어두는 수밖에 없다.
결국 기회는 대부분 지나고 나서야 기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운 역시 마찬가지다. 그 순간에는 우연이고 별것 아닌 일이었던 것이 시간이 흐른 뒤 인생의 방향을 바꾼 사건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운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아니다. 운과 마주칠 표면적을 넓히는 것이다.
글을 쓰고, 무언가를 만들고, 새로운 곳에 가보고, 사람을 만나고, 먼저 인사하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조금 돕는다. 대부분은 아무 일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로또를 한 장 샀다고 당첨되지 않는 것처럼, 문 하나를 열었다고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문이 하나도 없는 것과 여러 개 열려 있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모른다. 다만 운이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조금씩 늘리는 방법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운을 기다리는 대신 문을 만들려고 한다.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이전에는 하지 않았을 일을 해본다. 어떤 문으로 무엇이 들어올지는 모른다. 어쩌면 한참 뒤에야 그 일이 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자.
인생역전을 바라는 당신, 로또는 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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