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는 회사를 대표해야 한다
사원은 회사의 입장을 추측해야 하지만, 대표는 그 입장을 정할 수 있다. 내부의 일을 대신 처리하기보다, 밖에서 일의 조건을 협상하는 데 대표의 시간이 더 많이 쓰였으면 한다. 내가 자리에 없는 사장을 좋아하는 이유다.
담당자는 회사의 입장까지 추측해야 한다
클라이언트가 약속에 없던 기능을 추가해 달라고 한다. 예산을 늘리기는 어렵고, 일정도 그대로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런 요청을 받은 담당자는 무엇부터 생각하게 될까. 기능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겠지만, 그것만으로 답을 정하기는 어렵다. 우리 회사가 이 요청을 어디까지 받아줄 생각인지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량만 보면 거절하는 게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대표는 이 고객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다음 계약을 위해 이번에는 양보하려고 할 수도 있다. 반대로 담당자가 관계를 생각해서 받아줬는데, 회사에서는 왜 추가 비용도 받지 않고 일을 늘렸느냐고 할 수도 있다. 담당자가 판단해야 하는 것은 일의 난이도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정보와 권한까지 헤아려야 한다.
대표의 말은 회사의 입장이 된다
그런데 같은 요청을 대표가 받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일정 조정을 제안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받아주되 다음부터는 어렵다고 선을 그을 수도 있다. 협상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을 회사의 입장으로 삼을지, 다른 사람의 의중을 추측하지 않고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원이 “그 일정은 어렵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그것이 담당자의 의견인지 회사의 입장인지 다시 확인받아야 할 수 있다. 대표가 같은 말을 하면 그 말 자체가 회사의 입장이 된다. 똑같은 문장을 말해도 그 뒤에 실리는 권한이 다르다. 사원에게는 여러 번 확인하고 조율해야 하는 일이 대표에게는 자신의 판단으로 답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안에서 해결하기 전에, 밖에서 조정할 일
앞선 글에서 나는 일찍 퇴근하는 팀장과 자리에 없는 사장을 좋아한다고 썼다. 일을 맡겼다면 구성원이 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자리에 없는 사장을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대표는 그 이름처럼, 회사를 대표하는 영역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추가 요청 때문에 일정이 어려워졌을 때 대표가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업무를 다시 나누고, 우선순위를 바꾸고, 자신이 일부를 맡을 수도 있다. 당장 급한 일을 끝내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클라이언트와 일정이나 범위를 다시 이야기할 수는 없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밖에서 조정할 수 있는 조건을 그대로 둔 채,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대표가 회사 안에서 작업을 하나 더 처리하는 것보다, 밖에서 무리한 약속 하나를 조정하는 편이 구성원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상황이 있다. 담당자들은 이미 정해진 일정 안에서 일을 나누고 방법을 찾고 있는데, 대표는 그 일정 자체를 협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를 보고 있어도 손댈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
내가 대표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런 차이를 활용하는 일이다. 실무자가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깊이 들어가기보다, 그 일을 어떤 조건에서 맡을 것인지 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범위를 설명하고, 그에 맞는 비용과 일정을 협의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에는 회사의 입장으로 답하는 일 말이다.
내부를 이해하는 것과 직접 정리하는 것은 다르다
물론 그러려면 내부 사정을 알아야 한다. 구성원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디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르면 밖에서도 적절한 약속을 하기 어렵다. 다만 내부를 이해하는 것과 내부의 일을 직접 정리하는 것은 다르다. 담당자가 “이 범위라면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설명했을 때, 그 시간을 더 줄일 방법만 찾는 대신 그 판단을 가지고 외부와 이야기해주는 대표가 좋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도 내부에 공유되면 좋겠다. 어떤 요청은 받아줄 수 있고, 어디부터는 추가 협의가 필요한지, 담당자가 어디까지 결정해도 되는지 알 수 있다면 사원도 매번 대표의 생각을 추측할 필요가 없다. 대표가 밖에서 정한 회사의 입장이 안에서는 구성원이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자리에 없는 동안 해야 할 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사무실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사장은 아니다. 내부에서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일을 하고, 대표는 그들이 대신하기 어려운 일을 하느라 자리에 없는 모습이다. 고객을 만나고,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하고, 필요한 조건을 협상하는 데 대표의 시간이 더 많이 쓰였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자리에 없는 사장을 좋아한다. 구성원이 회사의 입장을 몰라 답을 미루고 있을 때, 그 입장을 정하고 회사의 이름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대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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