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퇴근하는 팀장과 자리에 없는 사장
실무를 잘한다고 관리도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직접 해결하는 것에서, 다른 사람이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 관리자가 된다는 것과 위임에 대해 생각해봤다.
예전에 나는 팀장이 되고 싶었다.
당시에는 나름 이유도 명확했다. 개발하면서 이것저것 의견을 내는 편이었고, 내가 보기에는 꽤 합리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그걸 실제로 적용하려면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의견이 다르면 다시 이야기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나는 그 과정이 꽤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내게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더 많으면 빠르게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팀장이라기보다 권한이 많은 개발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사람은 무능해질 때까지 승진한다
‘피터의 법칙’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조직에서 자신이 무능해지는 자리까지 승진한다는 이야기다. 일을 잘하면 승진하고, 승진한 자리에서도 일을 잘하면 또 승진한다. 그러다 더 이상 잘하지 못하는 자리에 도달하면 승진이 멈춘다.
처음에는 그냥 높은 자리에 무능한 사람이 있는 이유를 조금 짓궂게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리직을 생각하면서 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개발을 잘하던 사람이 팀장이 되고, 디자인을 잘하던 사람이 디자인팀의 관리자가 된다. 그런데 승진의 근거가 된 능력과 승진한 뒤에 필요한 능력은 다르다. 개발을 잘한다는 것과 개발자를 잘 이끄는 것은 같은 능력이 아니고, 디자인을 잘한다는 것과 디자이너가 좋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같은 능력이 아니다.
역할이 바뀌었는데도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잘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내가 했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디자인을 잘하던 디자이너가 관리자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팀원이 디자인을 가져오면 관리자는 피드백을 한다.
“나는 이 색이 별로인데.”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예쁜 것 같은데.”
“내가 했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아.”
사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 관리자가 직접 디자인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더 오래 일했고, 더 많은 것을 봤고, 비슷한 시행착오를 훨씬 많이 겪었을 테니까.
하지만 더 잘할 수 있다는 것과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리자가 자신의 실무 능력을 이용해 결과물을 계속 교정하기 시작하면 팀원은 점점 자신의 판단을 사용할 이유가 없어진다. 어차피 마지막에는 관리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좋은 디자인을 고민하는 것보다 관리자가 좋아할 디자인을 고민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나는 이런 관리자가 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맡겨봤더니 못하네. 내가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그렇다.
당연히 내가 더 잘할 수도 있다
사실 관리자가 더 잘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10년 일한 사람이 3년 일한 사람보다 잘할 가능성은 높다. 경험한 문제의 수도 다르고, 실패해본 횟수도 다르다. 그러니 일을 맡겨놓고 보면 답답할 수도 있다. 내가 하면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을 하루 종일 붙잡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보기에는 뻔한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일을 다시 가져오면 결국 어려운 일은 전부 관리자가 하게 된다. 그럴 거라면 굳이 관리자가 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내가 실무를 하면 된다.
나와 같은 수준의 사람만 내 아래에 둘 수도 없다. 나와 비슷한 경험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미 그에 맞는 역할을 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관리자가 된 뒤에는 “왜 나만큼 못하지?”가 아니라 “이 정도 연차의 사람이 여기까지 해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10년 동안 쌓은 경험을 3년 차에게 그대로 줄 수는 없다. 대신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기반으로 만들 수는 있다.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도 있고, 실패를 조금 더 일찍 발견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내가 매번 답을 알려주는 대신 다음번에는 혼자 판단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길 수도 있다.
실무를 잘하던 사람이 관리자가 됐다면 그 경험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 경험을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그 경험으로 내가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제는 그 경험으로 다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산을 올라갈수록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조직을 가끔 산처럼 생각한다. 봉우리에는 대표가 있고, 그 아래로 관리자와 실무자가 있다.
산 아래에 있는 사람은 나무를 본다. 어떤 나무가 병들었는지, 어디에 돌이 있는지, 바로 앞의 길이 어디에서 끊겼는지를 본다. 매일 그곳을 걷고 있으니 그곳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세히 아는 게 자연스럽다.
정상으로 올라가면 그런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산이 보인다.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으로 가고 있는지, 지금 선택한 길이 대략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더 넓게 볼 수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시야는 넓어지고 디테일은 흐려진다.
나는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대표가 나무 한 그루의 가지를 어디에서 잘라야 하는지까지 알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것까지 계속 보고 있다면 산 전체를 보기 어려워진다.
상급자가 하급자의 실무를 세세하게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봐야 하는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산 아래에 있는 사람보다 나무를 잘 볼 필요는 없다. 대신 사람들이 엉뚱한 산을 오르고 있지는 않은지 볼 수 있어야 한다.
관리자는 산의 중간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중간관리자의 위치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나는 조직이 대표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고 생각한다. 대표는 회사가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가장 많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질수록 그 모든 것을 직접 전달하고 직접 판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오랫동안 같이 일하면서 그 사람의 판단을 신뢰하게 되었을 수도 있고, 능력을 보고 신뢰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영역은 내가 계속 들여다보지 않아도 이 사람이 우리 조직의 방향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긴다.
나는 그 위임을 받은 사람이 관리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리자는 대표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표와 가까운 곳에서 조직의 철학과 맥락을 더 깊게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이 맡은 영역까지 흘려보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도 똑같이 해야 한다. 팀원에게 방향과 맥락을 충분히 공유했다면 그다음의 실무적인 판단은 그곳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에게 맡긴다.
방향은 공유하되, 실무는 위임한다.
물론 언제나 잘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개입해야 하고 잘못된 판단을 되돌려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일을 가져오는 것과, 다음에는 그 사람이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대응이다. 나는 후자가 관리자의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관리자는 자신의 복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관리자의 경험은 팀원의 판단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팀원이 자신의 위치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데 사용하는 편이 좋다.
“내가 보기엔 이게 더 예쁜데”라는 피드백보다 “이 결정은 우리가 이번에 달성하려는 목표와 충돌할 수 있을 것 같다”거나 “지금은 괜찮지만 이 방향으로 가면 다음 단계에서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피드백이 관리자의 위치에 더 어울린다.
그리고 그것이 조직에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한 답과 조금 다르더라도 담당자의 판단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관리자는 자신의 답을 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가 조직의 방향 안에서 자신의 답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관리자의 성과를 보는 기준도 달라진다. 내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해결했는가보다, 내가 직접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얼마나 많아졌는가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관리자가 필요했던 판단을 이제는 팀원이 스스로 할 수 있고, 예전에는 대표에게 물어봐야 했던 일을 이제는 관리자가 판단할 수 있다.
조직이 커질수록 이런 식으로 판단이 위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길은 결국 한 사람에게 모인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한 사람의 처리량에는 한계가 있다.
일찍 퇴근하는 팀장과 자리에 없는 사장
그래서 나는 일찍 퇴근하는 팀장을 좋아한다.
팀장이 먼저 퇴근했다고 해서 팀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지 않는 팀. 팀장에게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아도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판단하고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팀이라면, 팀장이 없는 시간은 불안한 시간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 없는 사장을 좋아한다.
사장이 자리를 비웠다고 모든 의사결정이 멈추지 않는 회사. 대표가 며칠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회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조직이라면, 대표가 없는 것이 곧 방향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일찍 퇴근하고 회사에 나오지 않는 관리자가 무조건 좋은 관리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이 없는 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모습이다.
관리자가 모든 일을 직접 해결하면 당장은 빠를 수 있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그 사람이 필요하다. 반대로 방향을 공유하고 판단을 위임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두면,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하나씩 줄어든다.
예전의 나는 설득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팀장이 되고 싶었다. 권한이 생기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더 빠르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팀장의 권한은 자신의 답을 관철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나눠주기 위해 있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내가 없어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만드는 것.
그래서 나는 일찍 퇴근하는 팀장과 자리에 없는 사장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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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은 회사의 입장을 추측해야 하지만, 대표는 그 입장을 정할 수 있다. 내부의 일을 대신 처리하기보다, 밖에서 일의 조건을 협상하는 데 대표의 시간이 더 많이 쓰였으면 한다. 내가 자리에 없는 사장을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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