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는 기여에 대해서
경계없이 기여한다는 것은 빈틈을 꽉 채우는게 아니라, 빈틈에 윤활하여 부드럽게 작동하도록 하는 일이다.
경계없이 기여한다는 것은 빈틈을 꽉 채우는게 아니라, 빈틈에 윤활하여 부드럽게 작동하도록 하는 일이다.
경계 없이 일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일과 결정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권한을 존중하면서도 영역 사이의 빈틈을 발견하고, 모두가 기여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의 맥락에 참여하고, 내 판단의 범위를 넘지 않도록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 사실과 위험은 정확하게 전달하되, 상대가 내 언어와 결론까지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더라도 중요한 방향과 감각, 즉 ‘바이브’가 공유되었다면 상대가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결정할 여지를 남긴다.
궁극적으로 좋은 기여는 내가 더 많은 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부주의한 경계 없음은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
나는 그동안 경계 없는 기여에 대해 조금 오해하고 있었다. 경계 없이 일한다는 것을 단순히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일의 가부를 따지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숱한 이력서와 면접에서도 경계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하지만 ‘경계 없음’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영역을 따지지 않고 기여한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구분된 영역에 무책임하게 개입하거나 월권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경계 없음은 경계를 무작정 허무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을 인지하면서도 퍼즐의 빈 공간처럼 조직 사이의 틈을 찾아 연결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중, 그동안 내가 일해왔던 모습을 천천히 떠올리게 됐다. 여러 장면 중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내 관점을 강요하던 모습이었다. 그것도 그 사람의 역할과 영역에 해당하는 일에서 그랬다.
그런 일의 방식은 당연하게도 마찰을 불러왔다. 그때마다 나는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불가피한 마찰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런 마찰을 즐기기도 했고, 내가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상대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한 방식이 실질적인 발전에 기여했는지는 별도로 살펴볼 일이다. 다만 조직 구성원의 피로도를 높이는 부작용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결정권은 역할의 일부다
경계 없이 일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영역에서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결정 권한을 존중하면서, 영역 사이에서 놓치는 정보와 위험을 발견해 연결하는 일에 가깝다.
물론 내 영역 밖의 일에서도 문제는 보일 수 있다. 더 나은 방향이 선명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내가 해야 할 일은 결정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공유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한 뒤, 결정은 그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의견을 내는 것과 상대의 결정을 대체하는 것은 다르다. 결정권은 단순한 권한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부여된 역할의 일부다. 책임은 상대에게 남겨둔 채 내가 납득할 때까지 결정을 통제하려 한다면, 그것은 기여보다 월권에 가깝다.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옳았는지만으로 월권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내가 더 나은 답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반복해서 다른 사람의 결정을 대신한다면 그 사람은 판단하고 책임질 기회를 잃는다. 단기적으로는 일이 빠르게 해결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특정한 사람만 판단하고 나머지는 그 판단을 따르는 조직이 만들어진다.
일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 일을 가져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 해결하는 것보다 담당자가 더 잘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와 맥락을 제공하는 편이 더 큰 기여일 수도 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빈틈이 있다면 계속 누군가의 일을 대신하기보다, 그 빈틈을 함께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분도 자원의 하나다
나는 내 태도가 조직에 부하를 발생시킨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그 부하를 감수하고서라도 문제를 극한까지 파고들면 서비스가 더욱 날카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없이 납득과 설득을 구성원에게 요구했고, 정답이 없는 이정표 앞에서도 서로가 완전히 설득될 때까지 논쟁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 과정에서 조직의 피로도나 구성원의 기분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했다. 그러나 좋은 동료나 리더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 중 하나는 동료가 다시 기여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기분’은 우리가 업무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동기 중 하나다.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제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불편한 사실을 말해야 할 때도 있고, 필요한 충돌을 피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같은 마찰이 반복된다면, 내가 전달한 내용뿐 아니라 기여하는 방식도 돌아봐야 한다.
특히 월권으로 인해 생기는 불쾌감은 단순한 감정적 잡음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의 판단이 존중받지 못하고, 맡은 역할이 지워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구성원은 점차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려는 동기를 잃는다. 나는 서비스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개입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이 스스로 움직이는 힘을 깎아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기여가 언제나 기분 좋은 말만 건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험을 공유하고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일은 때때로 불편하다. 중요한 것은 그 개입이 상대의 역할과 기여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가이다. 내가 옳은 답을 관철했더라도 누군가의 역할을 약화했다면 부정적인 기여일 수 있다. 반대로 불편한 문제를 제기했더라도 상대가 더 잘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했다면 긍정적인 기여가 될 수 있다.
경계 없는 진짜 ‘기여’로
그래서 경계 없는 기여는 더 많은 일과 결정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곳에 단서를 보태고, 영역 사이의 빈틈을 연결하되, 최종 판단을 내릴 사람의 자리는 남겨두는 일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기여의 목적은 내가 더 많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기여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일을 발견했다고 해서 빼앗지 않고, 다른 사람이 더 잘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와 맥락을 제공해야 한다.
누군가의 일을 대신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당장은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반복되면 조직은 특정한 사람의 판단과 역량에 의존하게 된다. 반대로 구성원 각자가 판단하고 책임지며, 필요한 단서와 위험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다면 조직 전체의 기여 가능성은 커진다.
좋은 동료와 리더의 역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모든 일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나의 기여로 누군가의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기여할 자리를 얻도록 하는 것 말이다.
나는 그동안 경계를 넘는 것을 용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경계를 인식하면서도 그 사이의 빈틈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형태의 용기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경계 없음은 경계를 지워버리는 태도가 아니다. 서로의 권한과 책임을 존중하면서도 조직이 끊어지지 않도록 연결하고, 궁극적으로 모두가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태도다.
맥락에 참여하기
밖에서 보이는 단서만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결정이 만들어진 과정과 제약, 담당자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먼저 묻는다. 경계를 넘어 의견을 내고 싶다면, 최소한 그 영역의 맥락에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표현을 조심하기
내 판단을 정답이나 요구사항처럼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한다”보다 “나는 이런 위험을 보았다”, “이 부분이 조금 걱정된다”처럼 관찰과 우려의 형태로 전달한다. 표현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판단이 차지해야 할 범위를 정확히 표시하는 것이다.
정확성보다 바이브를 전달하기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사람은 같은 문제를 다른 언어로 이해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내가 사용한 개념과 논리가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해서 소통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위험과 지향점이 공유되었다면, 상대가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결정하도록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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