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일만 잘하면 될까?
일을 잘하면 인정과 보상도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무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누군가와 계속 일하고 싶어질까요.
“일만 잘하면 됐지.” 사람을 평가할 때 흔히 하는 말입니다. 누구와 친한지, 어디를 나왔는지보다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로 판단하자는 뜻입니다. 배경을 걷어내고 결과만 보자는 말이니 공정하게 들립니다.
저도 ‘능력’을 키우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더 많이 알고,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남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면 그만큼 인정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이 더 큰 보상을 받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조직에서 인정받는 순서는 실무 능력의 순서와 꼭 일치하지 않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더 유능한 사람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고, 더 큰 권한을 주기도 합니다. 이 차이를 보면 조직이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그런데 정말 능력만으로 사람을 가르는 것이 조직에 맞는 평가일까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고르는 것과 우리의 일을 맡길 사람이 누구인지 고르는 것은 질문이 다릅니다. 조직에는 이루려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지키려는 기준이 있습니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도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발자가 기술적으로 더 좋은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지금 회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약속한 날짜에 서비스를 내놓는 일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당장의 출시보다 이후의 운영을 위해 구조를 먼저 고쳐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유능한 선택인지는 조직이 처한 상황과 무엇을 우선하는지를 빼놓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권한이 커지면 이 차이는 더 커집니다. 임원처럼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는 정해진 과제를 잘 수행하는 자리만은 아닙니다. 무엇을 할지, 무엇을 포기할지,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쓸지를 결정합니다. 모든 상황의 답을 계약이나 지시로 미리 정해둘 수도 없습니다. 결국 누군가에게 판단을 맡겨야 합니다.
그러니 맡기는 사람은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의 의도를 이해하는가. 내가 자리를 비워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지킬까. 이해관계가 갈리면 무엇을 선택할까. 조직이 어려워졌을 때도 우리의 문제를 자기 일로 받아들이고 돌파구를 찾으려 할까.
그 질문을 조금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내 사람인가’입니다. 나와 친한지를 넘어, 나와 비슷한 관점으로 상황을 보고 우리의 일을 위해 판단할 사람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뿐 아니라, 그 능력이 어디를 향할지를 확인하는 셈입니다.
저는 조직에서 말하는 신뢰가 여기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친한 사람을 한 번 더 챙기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판단과 권한을 맡기려면, 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믿을 근거가 필요합니다. 신뢰는 능력 평가에 덧붙는 장식이 아니라 위임의 바탕입니다.
이 확인은 채용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한 뒤에도 왜 이 회사에 오려는지, 의견이 다르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습니다. 지원자 역시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과 일하는 방식을 살펴봅니다. 함께 일하기 전에 서로의 관점이 맞는지 확인하고, 입사한 뒤에는 실제 판단과 행동으로 그 확인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일은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인 동시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기회입니다. 부탁받은 일을 정확하게 처리했는지뿐 아니라 왜 그 일을 부탁했는지 이해했는지, 말하지 않은 부분에서도 조직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는지가 드러납니다. 크고 작은 선택이 쌓이면서 ‘이 사람에게는 여기까지 맡겨도 되겠다’는 판단이 만들어집니다.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도 이와 연결됩니다. 좋은 해결책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실행할 권한까지 생기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방식을 바꾸려면 무엇을 지키면서 바꾸려는지, 그 변화가 왜 조직에 필요한지를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제안도 그 믿음이 쌓여 있느냐에 따라 주도적인 기여로 받아들여지거나 월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신뢰를 얻는 과정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근거로 이런 믿음을 만들까요. 직접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다면 판단하기가 쉬워집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충분히 겪어본 뒤에 일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과거 성과뿐 아니라 추천, 공유한 배경, 이어져 온 관계도 살펴보게 됩니다. 학연·지연·혈연이 작용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혈연은 한 번의 일이 끝나도 관계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관계가 이어지고 서로의 선택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은,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판단하는 근거가 됩니다. 같은 지역과 공동체에 연결된 사람도 서로 아는 사람이 있고, 그 안에 평판이 남습니다. 누군가의 추천은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 대해 그를 아는 사람의 판단을 빌려오는 일이기도 합니다.
학연에서는 공유한 교육과 경험이 단서가 됩니다.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기준에 익숙해졌는지 알면, 처음 만난 사람의 말과 사고방식을 가늠할 근거가 생깁니다. 이런 연결고리는 단순히 친해서 기회를 준다는 설명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와 얼마나 관점이 통할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간접적으로 판단하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물론 학연·지연·혈연이 기회를 독점하거나 불공정한 대우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다만 그 부작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와, 이런 관계가 왜 신뢰의 근거로 작용하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여기서는 후자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능력’도 별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험 성적, 자격증, 경력과 성과를 살피는 이유 역시 앞으로 이 사람에게 일을 맡겼을 때 잘 해낼지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공유한 배경과 관계는 어떤 관점에서 판단하고 행동할지 가늠할 근거를 줍니다. 능력도 결국 사람을 믿기 위해 확인하는 근거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뢰는 시험 점수처럼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적과 자격증은 알아보기 쉽고, 공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비교적 분명합니다. 그래서 인정받으려는 노력도 지식을 더 쌓고 기술을 더 익히는 쪽으로 쏠리기 쉽습니다. 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익숙한 기준이 조직의 평가 기준 전체라고 생각할 때 생깁니다. 시험은 정해진 문제와 채점 기준 안에서 답을 찾게 합니다. 조직에서는 지금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아는 좋은 답을 내놓는 것과 우리 조직에 필요한 답을 내놓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전자만 계속 연습하면서 후자까지 인정받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더 큰 인정과 보상을 원한다면 무엇을 더 공부할지만 물어서는 부족합니다. 우리 조직은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지금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하려 하는지, 나는 그 관점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해가 실제 일의 우선순위와 판단에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의 의미도 서로 친해지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여러 상황을 겪으며 우리가 같은 편에서 판단하고 움직일 사람인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정말 일만 잘하면 될까요. 조직은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에게 순서대로 상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을 맡길 사람에게 권한을 주는 곳입니다. 정해진 기준에서 나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조직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 일을 자기 일로 받아들여 판단할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 그렇게 쌓인 신뢰가 더 큰 기여의 기회를 만들고, 인정과 보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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