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넓히면, 방이 달라진다
기술력만으로 자신과 환경을 평가하면 배움의 범위도 좁아집니다. 기준을 넓혀 개발자의 성장 방향과 현재 위치를 다시 바라봅니다.
앞선 글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방에서 네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면, 그 방을 나와라.”
처음에는 이 말을 환경에 대한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더 이상 배우지 못하는 곳이라면,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더 이어가다 보니, 이 문장은 환경에 대한 이야기이기 전에 기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방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느끼는 것은, 정말 그 방의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사용하는 기준의 문제일까. 문득 예전에 들었던 면접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본인은 몇 점짜리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나요?”
처음 들으면 조금 뻔한 질문처럼 보인다. 자신감이 있는지, 겸손한지를 보려는 질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꽤 날카로운 질문이다. 중요한 것은 점수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90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누군가는 60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90점짜리 사람이 반드시 더 자신감 있고, 60점짜리 사람이 더 겸손한 것은 아니다. 기준을 낮게 잡으면 누구나 100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기준을 높게 잡으면 아무리 잘해도 100점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평론가의 점수가 유난히 박한 경우도 비슷하다. 최고의 작품에도 최고점을 쉽게 주지 않는 것은 작품을 낮게 평가해서라기보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완성의 기준이 그만큼 높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질문에서 정말 궁금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왜 그 점수를 주었는가.
그 이유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인다.
좋은 개발자를 기술적 깊이로 정의하는지, 제품을 만드는 능력으로 정의하는지, 문제 해결력으로 보는지, 동료에게 영향을 주는 능력까지 포함하는지. 결국 점수는 현재 위치를 말하고, 채점 기준은 그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을 말한다.
나라면 아마 80점이라고 답했을 것 같다. 개발자로서 나는 스스로를 꽤 높은 수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낮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10점 정도는 남겨두고 싶다. 내가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10점을 남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개발자의 모습과 지금의 나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80점은 단순한 자기평가가 아니다. 현재의 자신감과, 아직 모르는 세계에 대한 여백.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의 거리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처음의 문장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 방에서 네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정말 내가 가장 똑똑한가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무엇을 똑똑함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예를 들어 어떤 개발팀에서 내가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기준을 조금 넓혀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품을 보는 감각은 누군가가 더 뛰어날 수 있다. 사업을 이해하는 능력은 다른 사람이 더 나을 수 있다. 사람을 설득하고 조직을 움직이는 능력, 중요한 문제를 골라내는 판단력,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나는 가장 부족한 사람일 수 있다.
방은 그대로다.
기준만 넓어졌을 뿐인데, 내가 가장 똑똑했던 방이 내가 가장 멍청한 방이 된다.
이 지점이 재미있다.
우리는 종종 환경을 평가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가진 기준으로 환경을 잘라서 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좁을수록 나는 쉽게 우월해질 수 있다. 내가 잘하는 것만 평가 기준으로 삼으면 언제든 내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기준을 확장하면 내가 모르는 것이 계속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방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곧바로 방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전에 한 번쯤은 물어볼 수 있다.
정말 이 방에 배울 것이 없는가.
아니면,
내가 배움의 기준을 너무 좁게 잡고 있는가.
물론 기준을 무한히 넓힌다고 해서 모든 환경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좋은 환경을 선택할 필요도 있다.
다만 환경을 바꾸기 전에 내가 사용하는 기준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환경을 바꾸면 배움의 대상이 달라진다. 기준을 바꾸면 같은 환경에서도 내가 보는 것이 달라진다. 결국 성장에는 두 가지 움직임이 모두 필요한 것 같다.
더 나은 방을 찾는 것.
그리고 동시에,
지금 있는 방을 더 넓은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
어쩌면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내가 어떤 방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느끼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기준이 이미 충분히 넓다고 확신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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