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도 환경을 고른다
어디서든 배우려는 태도만으로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팀장과 이직 경험을 통해 성장 환경을 선택하는 기준을 돌아봅니다.
겸손은 어디서든 배울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환경을 초월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말이 있다.
“그 방에서 네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면, 그 방을 나와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결국 모두가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이 있는 방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렇게 계속 이동하다 보면 언젠가는 누군가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사람도 다시 방을 나가야 하나. 이런 식이면 세상에 남아 있을 방이 하나도 없어진다.
아무리 배움을 찾아다녀도 언젠가는 내가 그 방에서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댓글을 읽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배움이 없는 곳에는 가지 말라는 거죠.”
순간 관점이 바뀌었다.
나는 그동안 ‘가장 똑똑하다’는 말을 IQ나 지식처럼 비교 가능한 어떤 능력의 우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꼭 그런 의미일 필요는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 이곳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면.’
배움은 정말 환경에만 달린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같은 환경에서도 누군가는 계속 배우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결국 무엇을 배우느냐에는 환경뿐 아니라 나의 태도도 중요하다.
현자는 해골물에서도 진리를 깨친다.
그렇다면 이 격언은 왜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말해야 했을까.
“어디에서든 배울 것은 있다.”
그렇게 말하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보면 두 문장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어디에서든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은 나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반면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면 그 방을 나와라’는 말은 나에게 이동하라고 주문한다.
나는 이 차이가 인간의 한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현자라면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배우고, 실패에서도 배우고, 심지어 형편없는 환경에서도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현자는 아니다.
오히려 정말 현자라면 이미 어디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고 있을 테니, 애초에 이런 조언이 필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굳이 누군가에게 “방을 나가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의지만으로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없다.
좋은 태도는 중요하지만, 좋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도 필요하다.
그러다 문득 예전 일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팀장이었고 새로 들어온 팀원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우리 회사의 시장에서의 입지를 꽤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사람이 언젠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여기서는 배울 게 없는데.’
그 불안 때문에 나는 그 팀원에게 ‘현자의 태도’를 강조했다.
'어디에 가더라도 배울 것은 있다. 무엇을 배우느냐는 결국 당신에게 달려 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말에는 내 불안도 섞여 있었다. 좋은 태도를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오래 같이 일해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팀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아마 더 좋은 조건과 더 좋은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약 1년 뒤 그 회사를 나와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물론 내가 더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이전 회사에서도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보지 못했던 장점을 발견하고, 부족한 환경 자체를 하나의 학습 재료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것을 굳이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환경을 초월할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생각의 기준을 만들고, 조직의 문화가 행동의 범위를 만들고, 주변에서 반복해서 듣는 말들이 어느새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된다. 그렇다면 좋은 환경을 찾아 움직이는 것 역시 자신의 성장을 관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처럼 환경을 바꾸는 것은 반드시 도망이 아니다. 때로는 현명한 조율이 된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의지만으로 메우려 하기보다, 그것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과 장소를 선택하는 일이다.
이런 생각의 끝에, 앞선 격언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 방에서 네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면, 그 방을 나와라.”
이 말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끝없이 찾아 헤매라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성장을 오직 내 의지와 통찰력에만 맡겨야 하는 곳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라는 뜻에 더 가깝지 않을까.
어디에서든 배울 수 있다는 믿음과, 좋은 환경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는 판단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둘 다 필요하다.
어디에서든 배울 것을 찾는 겸손.
그리고 동시에,
내가 환경을 초월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겸손.
어쩌면 현자의 태도란 나쁜 환경에서도 끝까지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환경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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